골드러시 때 가장 꾸준히 돈을 번 건 금을 캔 광부가 아니라 곡괭이와 삽, 천을 판 상인들이었다고 한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도 그 시절 샌프란시스코에서 잡화를 팔던 상인이었다. 금이 나오든 안 나오든, 캐러 온 사람 전부가 장비는 사야 했으니까.

여기서 나온 게 “픽앤쇼벨(pick and shovel)“이라는 사고 도구다. 열풍의 주인공에 직접 걸지 말고, 그들이 반드시 사야 하는 도구를 가진 쪽에 서라. 누가 이길지 못 맞혀도 이긴다.

지금 AI에 이 비유를 대보면 딱 맞아떨어진다. 누가 최고의 AI를 만들지는 몰라도, 그들 전부가 엔비디아의 칩을 산다. 한 칸 위로 올라가면 그 칩을 실제로 찍어내는 TSMC가 있고, 한 칸 옆엔 칩에 반드시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쥔 삼성과 하이닉스가 버틴다. 곡괭이 장수, 그 곡괭이를 찍어내는 대장간, 날에 박히는 강철. 길목마다 통행료를 받는 구조다. 잘 맞는다. 그래서 위험하다.

비유가 잘 맞을수록 우리는 끝까지 따져보지 않는다. 한 걸음씩 더 따라가 보자.

첫째 균열: 곡괭이가 가장 잘 팔릴 때

“누가 이길지 못 맞혀도 이긴다”는 안심에는 보통 “게다가 싸 보인다”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곡괭이 장수의 세계에선 싸 보인다는 것부터가 함정이다.

금광 열기가 절정일 때 곡괭이가 가장 많이 팔리고, 그만큼 장수의 곳간도 두둑하다. 번 돈을 기준으로 보면 바로 그 순간 가게가 제일 싸 보인다. 하지만 그 두둑함이야말로 열기가 꼭대기에 닿았다는 신호다.

실제 사례가 SK하이닉스다. 최근 1년 남짓 사이 주가가 약 9배 올랐는데, PER은 여전히 6배 언저리다. 주가가 비싸진 게 아니라 이익이 그만큼 불어서다. 표면적으론 “9배 오르고도 헐값”이다. 그런데 메모리처럼 사이클을 타는 산업의 이익은 정점에서 폭증했다가 바닥에서 쪼그라든다. PER은 주가를 이익으로 나눈 값이라, 정점에서 이익이 부풀면 거꾸로 낮아 보이고, 바닥에서 이익이 마르면 도리어 치솟거나 적자가 난다. 그러니 낮은 PER은 안심 신호가 아니라 정점 경고일 수 있다. 곡괭이가 가장 잘 팔려 보일 때가, 실은 가장 비싸게 사는 때다.

둘째 균열: 금광이 마르면 곡괭이 장수도 끝이다

시스코라는 회사가 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픽앤쇼벨이라 불렸다. 모두가 인터넷이라는 금을 캐러 갈 때, 그 길에 깔리는 네트워크 장비를 판 회사다. 200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됐다. 그리고 거품이 터지자 시총이 약 90% 증발했고, 20년이 지나도록 그때의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다.

회사가 망한 게 아니다. 시스코는 지금도 멀쩡히 굴러간다. 망한 건 그 꼭대기에서 산 사람이다. 좋은 회사와 좋은 선택은 다른 문제였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지금 그 금광에는 정말 금이 있는가. AI의 곡괭이 수요는 결국 거대 기업들이 쏟아붓는 투자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AI 데이터센터에 쏟는 돈이 정작 AI로 벌어들이는 매출을 한참 앞지른다. 쓰는 돈이 버는 돈을 이렇게 오래 앞지를 수는 없다. 어느 순간 회수가 안 된다고 판단하면 곡괭이 주문부터 끊긴다. 시스코가 바로 그렇게 됐다.

그 곡괭이는 다른 금광에서도 쓰이나

같은 곡괭이 장수라도 금광이 하나뿐인지, 여러 개인지가 생존을 가른다. 엔비디아의 칩은 게임에서 암호화폐로, 다시 AI로, 이제 로봇으로 금광을 갈아타며 살아남았다. 범용 곡괭이다. 반면 AI 전용에 가까운 도구일수록 금광 하나에 운명이 묶인다. “픽앤쇼벨은 안전하다”는 명제에는, 알고 보면 “금광이 살아 있고, 곡괭이가 범용일 때만”이라는 긴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건 어느 회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유에 관한 이야기다. 비유는 사다리다. 어느 높이까지는 빠르게 데려다주지만, 그 위부터는 스스로 올라야 한다. “픽앤쇼벨은 안전하다”는 사다리의 중간이었지 꼭대기가 아니었다. 너무 잘 맞는 비유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할 값어치가 있다. 잘 맞는다는 건 그만큼 이미 설득당했다는 뜻이니까.

— tom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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