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길드의 장인은 자기 비법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가죽을 어느 두께로 다듬는지, 쇠를 어느 빛깔이 될 때까지 달구는지는 책이 아니라 손끝과 머릿속에 있었다. 그것을 도제의 손에 직접, 몇 해에 걸쳐 옮겨 주었다. 비법을 밖으로 적지 않은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힘이었다.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이 곧 그 사람을 대체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듯, 우리가 가진 지식의 대부분은 말로 다 옮겨지지 않는 채 몸과 직관에 잠겨 있다. 이것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 부른다. 조직의 지식도 마찬가지다. 문서고가 아니라 사람들 머릿속에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 있다.
앞 글에서 우리는 단일 진실(SSOT)이 에이전트에게 무엇을 해 주는지를 봤다. 믿고 딛을 신뢰의 주소이자, 답을 지어내지 않게 받쳐 주는 근거의 바닥이라는 것. 그런데 거기엔 자연스레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다. 그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는 누가, 얼마나 큰 값을 치르는가. 치러야 할 값은 생각보다 크다. 단일 진실을 만든다는 건, 그동안 사람 머릿속에 미뤄 둔 빚을 이제야 갚는 일이기 때문이다.
위임의 경제학
과거에 조직은 이 암묵지를 대개 그냥 머릿속에 두었다. 그리고 그건 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머릿속에 두면 밖으로 꺼내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필요할 때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만이다. 김 부장이 “그건 감으로 알지” 하면 됐고, 회의에 안 들어가도 “걔는 이렇게 반응할 거야”라고 알고 있으면 충분했다. 싸고, 빠르고, 유연했다. 말하자면 조직은 지식을 사람에게 위임해 둔 것이다. 외부화 비용이 0인 보관함에.
이 방식이 잘 굴러간 데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 지식을 꺼내 쓰는 쪽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애매하면 다시 묻고, 맥락을 채워 듣고, 적당히 알아서 해석한다. 머릿속에 든 어렴풋한 지식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그럭저럭 전달됐다. 그래서 굳이 모든 것을 또박또박 글로 옮겨 적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에이전트는 김 부장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에이전트가 무언가를 하려면 그 지식이 글자로 적혀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에이전트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자 0이던 비용에 갑자기 청구서가 날아든다. 모두가 머릿속에 있던 것을 끄집어내 문서로 만드는 일에 매달리게 된 이유다.
사실은 미뤄 둔 빚이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둔 지식이 정말로 공짜였을까. 아니다. 그건 미뤄 둔 빚이었다.
소프트웨어에는 기술 부채라는 말이 있다. 급해서 대충 짜 두면 당장은 빨리 가지만, 나중에 이자가 붙어 돌아온다는 뜻이다. 머릿속에 둔 지식도 똑같다. 일종의 지식 부채다. 그 사람이 퇴사하면, 휴가를 가면, 그냥 잊어버리면, 지식이 통째로 증발한다. 핵심 인물 한 명이 사라지면 프로젝트가 멈추는 위험을 가리켜 버스 팩터라고 부른다. 그 한 명이 버스에 치이면 끝이라는 뜻의 섬뜩한 농담이다.
그러니 지금 벌어지는 일은 새로운 비용이 생긴 게 아니다. 원래 갚았어야 할 빚을 에이전트 시대가 앞당겨 청구한 것에 가깝다. 사람만 일하던 시절에는 “그냥 김 부장한테 물어보면 되지”라며 이자를 계속 미룰 수 있었을 뿐이다. 위 그림처럼, 머릿속에만 둔 지식은 당장은 평평하고 공짜처럼 보이지만 부채가 조용히 쌓이다가 사람이 떠나는 순간 절벽처럼 한꺼번에 청구된다. 미리 밖으로 적어 두는 쪽은 처음에 비용을 조금 치르는 대신 그 뒤가 안정적이다.
공공재라는 함정
그렇다면 다들 알아서 부지런히 적으면 될 텐데, 왜 그게 잘 안 될까. 단일 진실이 전형적인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공공재란 누구나 공짜로 가져다 쓸 수 있고, 한 사람이 쓴다고 닳지도 않는 자산을 말한다. 잘 만들어 둔 단일 진실이 딱 그렇다. 문제는 만드는 데 품이 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약한 비대칭이 생긴다. 비용은 사적이고 지금 당장 드는데(내가 시간을 들여 적는다), 혜택은 공적이고 그것도 한참 뒤에야 모두에게 돌아간다(언젠가 남들이 덕을 본다). 이런 구조는 늘 과소공급된다. 경제학이 무임승차라 부르는 문제다. 다들 “남이 적겠지” 하며 미루다, 정작 아무도 안 적는다.
조직에서 이 비대칭은 합리적인 저항으로 나타난다. 막연한 변화 거부가 아니라 이유 있는 거부다. 첫째, 희소성이 곧 힘이었다. “이건 나만 안다”가 그 사람의 가치이자 안정성이었는데, 머릿속을 다 문서로 내놓으라는 건 자기 대체 불가능성을 스스로 줄이라는 요구다. 둘째, 비용을 내는 사람과 이득을 보는 사람이 다르다. 귀찮은 정리 작업은 지식을 가진 선배가 하는데, 빨라진 온보딩과 자동화의 이득은 조직과 후배가 가져간다. 노력과 보상이 따로 노니 동기가 생길 리 없다. 셋째, 폴라니의 말대로 암묵지는 애초에 글로 다 옮겨지지 않는다. “이건 적으면 절반은 사라져”라는 장인의 항변에는 진짜 일리가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외부화하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한다. 핵심은 “전부”가 아니라 “에이전트가 실제로 행동의 근거로 삼는 것”만 골라 꺼내는 데 있다. 나머지는 여전히 머릿속에 두어도 된다. 이건 앞 글에서 본 “단일 진실은 신화”라는 반론, 곧 모든 것을 한곳에 모으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지적과 정확히 만난다. 다 모으는 게 답이 아니라, 무엇을 모을지 가리는 게 답이다.
값을 낮추는 법
다행히 이 빚은 더 영리하게 갚을 수 있다. 그리고 핵심은 의외의 곳에 있다. 진실을 만드는 일에서 진짜 비싼 건 한 번 만드는 게 아니라 계속 맞게 유지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정원에 비유하면, 씨를 심는 건 하루지만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건 평생이다. 그러니 값을 낮추는 길은 세 갈래다. 덜 만들고, 저절로 만들고, 저절로 유지하기.
가장 강력한 건 덜 만드는 것이다. 모든 걸 진실로 삼으려는 순간 비용이 폭발한다. 기준은 하나다. 자주 바뀌지 않고, 여러 곳이 그것에 기대고, 틀리면 사고가 나는가. 그런 것만 골라 진실로 승격시킨다. 범위를 줄이는 것이 유지 비용을 크게 줄인다.
다음은 저절로 만드는 것이다. 외부화가 비싼 진짜 이유는 따로 시간을 내서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하는 흐름에 캡처를 묻어 두어, 일하면 지식이 부산물로 떨어지게 한다. 작업한 흔적, 주고받은 대화, 고친 코드에서 에이전트가 알아서 지식을 추려 문서로 만들어 주면, 선배에게 “문서 쓰세요”라고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평소대로 일하세요, 정리는 에이전트가 합니다”가 된다.
마지막은 저절로 유지하는 것이다. 같은 사실을 여러 곳에 손으로 복사하는 순간 어긋남이 시작되므로, 원본 하나만 두고 목록과 요약과 색인은 거기서 기계가 자동으로 뽑아내게 한다. 유지할 진실이 딱 하나로 줄어든다. 거기에 죽은 링크나 낡은 항목을 자동으로 잡아내는 점검을 붙이면, 사람이 일일이 순찰을 돌지 않아도 어긋남에 알람이 울린다.
이렇게 비용 자체를 0에 가깝게 만들면, 앞서 본 조직의 저항도 상당 부분 녹는다. “귀찮은데 왜 내가”라는 반발은, 귀찮음이 사라지는 순간 근거를 잃기 때문이다.
값을 돌려주는 법
비용을 낮추는 것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그 효용을 기여한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아무리 싸게 만들어도 효용이 만든 사람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공공재의 고리는 끝내 닫히지 않는다.
첫째, 효용을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안 보이는 효용은 보상도 동기도 만들지 못한다. “당신이 적은 이 메모가 이번 주 에이전트 작업 열두 건의 근거였습니다”, “이 문서 덕분에 신입 온보딩이 2주에서 3일로 줄었습니다.” 문서가 그저 존재한다가 아니라, 문서가 일을 했다를 숫자로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그리고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여자 본인을 첫 번째 수혜자로 만드는 것이다. 머릿속 지식을 꺼내 둔 선배가 가장 먼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거 어떻게 해요?”를 백 번 받던 사람이, 한 번 적어 두면 에이전트가 대신 답해 준다. 내가 적으면 내가 편해진다는 사실이 즉시 체감되면, “왜 내가 비용을 내냐”는 반발은 뿌리부터 사라진다. 비용을 내는 사람과 덕을 보는 사람이 같아지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적 보상으로 메운다. 누가 이 진실의 주인인지를 드러내 평판이 쌓이게 하고, 지식 기여를 부수 활동이 아니라 정식 성과로 인정한다. 내가 적은 것이 내 이름과 함께 남아 평가로 돌아온다면, 굳이 떠밀지 않아도 손이 움직인다.
넷째, 진실이 쓰일수록 단단해지게 한다. 에이전트가 그 지식으로 일한 결과가 좋았는지 틀렸는지를 다시 원본에 피드백하면, 진실이 검증되며 강해지는 선순환이 생긴다. 기여자에게는 내 지식이 쓰일수록 권위가 붙는다는 또 다른 보상이다.
다만 한 가지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측정을 잘못하면 모든 게 거꾸로 간다. “문서 개수”를 성과 지표로 걸면 쓰레기 문서가 양산되고, 만들수록 유지 비용만 늘어 진실이 오염된다. 재어야 할 것은 산출물의 개수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일에 기여한 정도다.
머릿속에서 꺼낸다는 것
렘브란트가 그린 노철학자는 평생을 머릿속에 쌓아 온 사람의 초상이다. 길드의 장인이 그랬듯, 오랫동안 지식의 가장 안전한 보관함은 사람의 머릿속이었다. 거기 두면 공짜였고, 그 사람을 귀하게 만들었다.
에이전트의 시대는 그 보관함의 문을 두드린다. 머릿속에 잠긴 것은 에이전트에게 닿지 않으니, 이제 그것을 밖으로 꺼내 단단한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그 일은 분명 값이 들고, 그 값에 대한 저항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 빚은 원래 갚았어야 할 빚이고, 영리하게 갚으면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행동에 필요한 것만 골라, 일의 부산물로 저절로 꺼내고, 그 효용을 꺼낸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
결국 진실은 누군가의 의지나 부지런함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을 떠받치는 구조로 유지된다. 단일 진실이 에이전트에게 무엇을 해 주는지가 절반이라면, 그 진실을 누가 어떻게 떠받치느냐가 나머지 절반이다. 좋은 구조를 짜는 일이 바로 그 나머지 절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