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실패한 이유는 벽돌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하늘에 닿는 탑을 쌓을 손은 충분했는데, 어느 날 말이 흩어져 서로 뜻이 통하지 않게 되자 공사가 멈췄다. 큰일을 하는 데 진짜 어려운 부분은 일 자체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어떻게 한 방향으로 엮느냐다.
조직도(org chart)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이다. 누가 누구 위에 있느냐를 그린 권력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다르다. 사람이 많아지면 누가 무엇을 맡고, 정보를 누구에게 전하고, 충돌을 누가 정리할지를 매번 새로 협상할 수 없다. 그 협상을 미리 정해 두어 조정 비용을 낮추는 장치 — 그게 조직 구조다. 그래서 조직을 어떻게 짜느냐는 곧 “이 비용을 어디서, 누가 치를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이 글은 그 답들을 분류하고, 주요 기업이 무엇을 택했는지 보고, 각 선택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해 왔는지, 그리고 AI가 이 그림을 어떻게 다시 그리고 있는지까지 따라간다.
첫 번째 축: 사람을 무엇으로 묶는가
조직을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사람을 무엇을 기준으로 한 팀에 넣느냐”다. 답은 크게 둘로 갈린다.
- 기능 조직(functional): 하는 일의 종류로 묶는다. 개발팀, 디자인팀, 마케팅팀, 데이터팀. “같은 직군끼리” 모인다.
- 목적 조직(purpose/mission): 달성하려는 목표로 묶는다. 결제경험팀, 신규유저팀, 대출팀처럼 직군이 섞인 한 팀이 하나의 목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 토스의 사일로(Silo), 아마존의 투피자 팀이 여기 속한다.
비유하자면, 기능 조직은 병원의 내과·외과·영상의학과처럼 전문 분과로 나눈 것이고, 목적 조직은 “이 환자 한 명을 살린다”는 목표 아래 내과의·외과의·간호사를 한 팀으로 묶은 것이다. 전자는 전문성이 깊고, 후자는 한 문제에 대한 책임이 분명하다.
도식으로 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기능 조직은 같은 직군을 세로 기둥으로 모으기 때문에, 하나의 일은 기획 기둥에서 개발 기둥으로, 다시 디자인 기둥으로 건너다녀야 한다. 목적 조직은 미션 상자마다 직군을 섞어 넣어, 그 일이 상자 하나 안에서 끝난다.
둘의 장단점
같은 일을 두 구조에 통과시키면 정확히 반대되는 강점과 약점이 나온다.
| 기능 조직 | 목적 조직 | |
|---|---|---|
| 묶는 기준 | 직무·전문성 (어떻게) | 목표·미션 (무엇을 위해) |
| 전문성 | 깊다 (같은 직군이 모임) | 흩어지기 쉽다 |
| 의사결정 속도 | 느림 (팀 간 협의·핸드오프) | 빠름 (한 팀 안에서 종결) |
| 책임 소재 | 모호함 (“그건 다른 팀이…”) | 명확함 (이 팀이 끝까지) |
| 자원 효율 | 높음 (중복 없이 공유) | 낮음 (팀마다 직군 중복 배치) |
| 일관성 | 높음 (표준이 한 팀에서 통제) | 깨지기 쉬움 (팀마다 제각각) |
| 잘 맞는 상황 | 안정·효율, 표준화된 일 | 빠른 실험, 제품 주도 성장 |
기능 조직의 가장 큰 함정은 사일로의 역설이다. 여기서 사일로는 토스의 좋은 사일로가 아니라 나쁜 의미의 칸막이다. 팀 사이에 벽이 생겨 “공은 넘겼으니 내 일은 끝”식 핸드오프가 늘고, 일이 부서를 옮겨 다니며 느려진다. 제품이 실패해도 “기획이 별로였다 / 개발이 늦었다”로 서로 떠넘기기 쉽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목적 조직은 그 반대를 산다. 한 팀이 일을 끝까지 쥐니 빠르고 책임이 분명하지만, 디자이너가 팀에 혼자 있으면 동료에게 배울 기회가 줄고, 팀마다 비슷한 바퀴를 다시 발명한다. 모든 팀이 자기 개발자·디자이너를 따로 두니 사람도 더 든다. 속도와 오너십을 얻는 대신 전문성과 일관성, 효율을 내준다.
그래서 이 선택은 우열이 아니라 교환이다. 한 줄로 줄이면 효율·전문성을 살 것이냐, 속도·책임을 살 것이냐다.
기업들은 무엇을 택했나
추상적인 분류는 실제 기업에 대보면 또렷해진다. 다만 조직은 시기마다 바뀌고 내부 실상은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으니, 아래는 공개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 사례로 읽는 게 맞다.
| 기업 | 주된 형태 | 특징 |
|---|---|---|
| 애플 | 기능 조직 (교과서적 사례) | CEO 아래가 “아이폰 사업부장”이 아니라 하드웨어·소프트웨어·디자인 총괄이다. 손익을 제품별로 쪼개지 않고 회사 전체로 본다. |
| 아마존 | 목적 조직 | 투피자 팀 + 싱글스레드 리더(STL) — 한 명이 하나의 미션을 끝까지 책임진다. 자율과 속도를 극대화한다. |
| 스포티파이 | 목적 조직 (스쿼드 모델) | 스쿼드(미션)×챕터·길드(직군 가로축)의 조합. 단, 정작 스포티파이 본인들이 “우리도 이 모델대로 살지 않는다”고 밝혔는데도 이름만 업계 표준처럼 퍼졌다. |
| 테슬라·스페이스X | 기능 조직 성향 | 사업부 손익을 쪼개기보다 엔지니어링 직접 보고와 제품 통합을 중시한다. |
| 마이크로소프트 | 사업부형 → 통합 | 과거 사업부끼리 경쟁이 과열됐던 구조를, 나델라가 기능·미션 통합 쪽으로 다시 묶었다. |
| 토스 | 목적 조직 (사일로) | 사일로가 PO·디자이너·개발자를 묶어 미션을 끝까지 책임진다. |
여기서 한 가지 규칙이 보인다. 제품이 하나의 통합된 경험일수록 기능 조직이, 여러 독립 라인으로 갈라질수록 목적 조직이 유리하다. 아이폰처럼 모든 부품이 한 몸으로 맞물려야 하는 제품은 직군을 통합해 매끄럽게 다듬는 편이 낫고, 수많은 서비스가 따로 도는 아마존은 각 서비스에 작은 팀을 붙여 독립적으로 굴리는 편이 낫다. 제품의 구조가 조직의 구조를 끌어당긴다.
순수형은 오래 못 간다 — 보완의 역사
현실의 기업은 둘 중 하나를 순수하게 쓰지 않는다. 어느 쪽을 골라도 약점이 분명하니, 그 약점을 메우는 장치를 덧대 온 역사가 곧 조직론의 최근 흐름이다.
매트릭스(matrix). 가장 고전적인 절충이다. 세로축은 목적 조직(스쿼드·사일로)으로 일상의 미션을 책임지고, 가로축은 기능 커뮤니티(챕터·길드)로 같은 직군끼리 묶어 전문성과 표준, 커리어를 챙긴다. 목적 조직으로 속도와 책임을 얻고, 가로축으로 기능 조직의 전문성을 되살리는 구조다. 대가는 “상사가 둘”이라는 매트릭스 고유의 혼란 — 미션 리더와 챕터 리더 사이에서 줄을 타야 한다.
팀 토폴로지(Team Topologies). 2019년 등장해 지금은 엔지니어링 조직의 공용어가 됐다. 팀을 네 종류로 나눈다.
- 스트림 정렬 팀(stream-aligned): 하나의 가치 흐름(제품·기능)을 책임지는 주력 팀. 목적 조직의 진화형이다.
- 플랫폼 팀(platform): 위 팀들이 빠르게 일하도록 내부 도구·인프라를 제품처럼 제공한다.
- 인에이블링 팀(enabling): 다른 팀에 전문성을 한시적으로 코칭한다.
- 복잡 서브시스템 팀(complicated-subsystem): 결제 엔진, 머신러닝처럼 고난도 전문 영역만 전담한다.
핵심 통찰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지 부하 — 한 팀이 감당할 복잡도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 선을 넘기지 않게 경계를 긋는다. 다른 하나는 콘웨이 법칙 — 조직 구조가 곧 시스템 구조로 굳으니, 원하는 아키텍처대로 팀을 먼저 설계한다.
플랫폼 엔지니어링. 위의 플랫폼 팀이 따로 떨어져 나와 독립 트렌드가 됐다. 배포·관측·데이터 같은 공통 기반을 내부 플랫폼으로 제품화해서, 제품팀이 인프라에 시간을 쓰지 않고 미션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목적 조직의 “팀마다 바퀴를 다시 발명한다”는 약점을 정면으로 메우는 답이다.
흐름을 한 줄로 묶으면 이렇다. 지난 10여 년의 큰 물결은 기능 조직에서 목적 조직(자율 스쿼드)으로였고, 지금은 그 단점인 중복과 표준 분열을 팀 토폴로지와 플랫폼 팀으로 메우는 2세대 목적 조직으로 정교해지는 중이다. 순수한 형태보다, 스트림 팀(목적)과 플랫폼 팀(기능 효율)을 함께 두는 조합이 오늘의 기본값이다.
AI가 조직의 모양을 바꾼다
여기까지는 사람만 있는 조직의 이야기다.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들어오면서 위의 그림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핵심을 먼저 말하면, AI는 일손을 덜어 주기 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던 접착제부터 녹인다.
앞에서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를 조정 비용으로 설명했다. 그 조정 노동의 상당 부분 — 일정 맞추기, 진척 취합, 보고서 정리, 성과 모니터링, 정보를 위아래로 나르기 — 이 바로 중간관리자의 일이었다. 에이전트가 이 일을 대신하면, 그 층이 존재할 이유가 줄어든다. 한 연구는 이를 두고 AI를 “조정을 압축하는 자본”이라 불렀다. AI는 노동을 대체한다기보다, 조직을 묶는 접착제의 값을 떨어뜨린다는 관점이다.
이 변화는 조직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피라미드에서 다이아몬드로
전통적인 조직은 피라미드다. 바닥에 신입과 주니어가 잔뜩 있어 데이터를 모으고 1차로 처리하고,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바닥의 단순·반복 업무를 흡수하면서 모양이 바뀐다.
신입이 하던 일을 에이전트가 가져가니 채용이 줄어 바닥이 좁아진다. 사라질 위기였던 중간층은 없어지는 대신, 에이전트를 훈련하고 감독하고 운영하는 역할로 재배치되어 오히려 두툼해진다. 그래서 넓은 바닥의 피라미드가, 위아래가 좁고 허리가 두꺼운 다이아몬드로 변한다. 가트너는 2026년까지 조직의 20%가 AI로 구조를 평탄화해 현재 중간관리직의 절반 이상을 없앨 것으로 본다. 깃랩은 관리 8개 층을 걷어내고 소규모 자율팀 수를 두 배로 늘리는 “에이전트 시대” 재편을 선언했고, 메타는 매니저 대 엔지니어 비율을 1대 50 방향으로 옮기고 있다.
여기엔 함정이 하나 있다. 신입과 중간직이 줄면 미래의 리더가 자라날 통로도 함께 마른다. 바닥에서 굴러 본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당장의 효율을 위해 10년 뒤의 리더 파이프라인을 비우는 셈이라, 이 다이아몬드를 택한 기업들이 다음 10년에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조직도에서 작업도로
더 근본적인 변화는 조직의 단위가 바뀐다는 데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람의 보고 라인을 그린 조직도(org chart)가, 일을 중심으로 사람과 에이전트를 함께 묶은 *작업도(work chart)*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누가 누구 밑이냐가 아니라, 이 일을 누구(사람)와 무엇(에이전트)이 함께 하느냐가 조직의 기본 칸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역할이 나온다. 에이전트 매니저 — 자기 일을 자동화한 뒤 그 자동화된 흐름의 오너이자 운영자가 되는 사람이다. 그가 쥔 것은 회사가 쉽게 대체하지 못하는 제도적 지식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한발 더 나가 “AI 에이전트를 팀원처럼 다뤄라”고 한다. 온보딩하고, 역할과 권한을 정의하고, 성과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에이전트가 조직도의 한 칸을 차지하는 세계관이다.
빨라지는 만큼 얇아지는 그물
다만 평탄화에는 반대급부가 있다. 중간 검수 층이 사라진다는 건, 오류를 잡던 그물이 얇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재 단계가 많으면 느린 대신 잘못된 결정이 중간에 걸러졌다. 그 단계를 걷어내면 속도는 붙지만, 한 사람 또는 한 에이전트의 잘못된 판단이 곧장 밖으로 나간다. 특히 금융처럼 실수 한 번이 치명적인 영역에서는, 속도를 얻은 만큼 사람의 최종 검증과 감사를 어디에 다시 심을지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건 결국 위임의 문제로 돌아온다. 에이전트에게 일을 넘길수록 처리량은 늘지만, 그 일을 떠받치는 이해까지 넘어가지는 않는다. 조직이 다이아몬드로 얇아질 때 비는 것은 일손만이 아니라, 그 일을 이해하고 책임지던 자리다. 에이전트 매니저라는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동화를 굴리는 사람이 그 흐름을 이해하고 있어야, 얇아진 그물의 마지막 매듭이 된다.
정리
조직 구조는 결국 하나의 교환을 어떻게 푸느냐의 문제다. 효율과 전문성을 살 것이냐(기능), 속도와 책임을 살 것이냐(목적). 순수한 어느 쪽도 오래 못 가기에 매트릭스·플랫폼 팀·팀 토폴로지로 서로의 약점을 메워 왔고, 이제 AI가 그 위에 새로운 축을 하나 더 그었다. 조정 비용이 무너지며 피라미드는 다이아몬드가 되고, 조직의 단위는 보고 라인에서 사람과 에이전트의 작업 묶음으로 옮겨 간다.
바벨탑의 교훈은 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말이 흩어져 무너졌다는 데 있었다. 조직 구조의 역사는 그 말을 어떻게 다시 맞출지에 대한 긴 답이고, AI는 이제 그 말을 옮기는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겠다고 나선 참이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옮기는 일을 기계에 넘긴 뒤에도, 무엇을 지을지 정하고 끝내 책임지는 자리에는 누가 설 것인가.
— tom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