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떠올려 보자. 풀어야 할 문제가 산처럼 쌓여 있고, 손대는 곳마다 숫자가 움직인다. 결제 성공률 78퍼센트를 90퍼센트로 끌어올리고, 가입 흐름을 절반으로 줄이고, 응답 속도를 두 배로 당긴다. 목표를 세우는 일이 즐겁다. 세우는 족족 닿을 것 같고, 닿으면 티가 나기 때문이다.
그 팀이 3년 뒤에도 같은 자리에 있다. 사람은 그대로고, 실력은 오히려 늘었다. 그런데 목표를 세우는 회의가 어쩐지 무겁다. 올릴 숫자가 잘 안 보이고, 잡아 놓은 목표도 어딘가 김이 빠져 있다. 누가 게을러진 것도 아닌데 팀 전체가 미지근하다. 흔히 이걸 동기의 문제, 혹은 사람이 나태해진 문제로 읽는다. 워크숍을 가고, 비전을 새로 칠하고, 회식을 한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똑같다.
이 글의 주장은 이렇다. 오래된 팀의 동력 저하는 의지의 문제이기 전에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이 구조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노화가 섞여 있다. 하나는 팀이 푸는 문제공간이 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안의 사람이 닳는 것이다. 둘은 증상이 비슷해서 자주 한 덩어리로 취급되지만, 원인이 다르고 그래서 약도 다르다. 잘못 짚으면 워크숍은 매번 헛돈다.
첫 번째 노화: 문제공간이 늙는다
새로 생긴 팀, 새로 시작한 제품에는 낮게 매달린 과일이 천지다. 손만 뻗으면 닿는 개선거리가 사방에 널려 있다. 결제 성공률 78퍼센트를 90퍼센트로 올리는 일은 한 분기면 끝난다. 숫자가 쭉쭉 오르고, 오를 때마다 모두가 그 변화를 체감한다. 목표가 저절로 신이 나는 시기다.
그런데 같은 팀이 그 영역을 3년 동안 갈고닦으면 어떻게 될까. 이제 성공률은 97.5퍼센트에서 97.8퍼센트가 된다. 0.3퍼센트포인트를 위해 예전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이 들고, 올려놔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 체감(diminishing returns)이라 부르는 곡선이 그대로 나타난다. 초기에는 ‘쉬운데 임팩트가 크고’, 성숙기에는 ‘어려운데 임팩트가 작다’. 목표의 난이도와 보상이 완전히 뒤집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밑바닥에 있는 원인이라고 나는 본다. 동기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문제 자체가 늙은 것이다. 사람이 식은 게 아니라 광맥이 얇아진 것이다. 초기에 두껍게 흐르던 광맥을 3년간 캐냈으니,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곡괭이질을 해도 나오는 게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게으름이 아니라 지질(地質)의 문제다.
여기서 두 번째 증상이 따라온다. 올릴 것이 없으니, 팀의 목표가 슬그머니 ‘올리는 것’에서 ‘지키는 것’으로 미끄러진다. 성공률 유지, 장애 0건 유지, 이탈률 방어. 전부 지키는 목표다. 처음엔 자연스러운 전환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지키는 목표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0에서 1로 갈 때, 무언가를 넘어설 때 보상 신호를 낸다. ‘어제와 같음’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먹는 구조, 곧 심리학에서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 부르는 이 모드는 사람을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만든다. 잃지 않으려는 게임은, 얻으려는 게임과 같은 에너지를 끌어내지 못한다. 오래된 운영 조직이 조용히 지쳐 가는 풍경의 정체가 대개 이것이다.
두 번째 노화: 사람이 닳는다
문제공간과 별개로,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오래 하면 사람 쪽에서도 동력이 빠진다. 여기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설명이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이 정리한 이 이론은, 인간의 내재적 동기가 세 개의 기둥에서 나온다고 본다.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 당근과 채찍은 밖에서 누른다. 반면 안에서 저절로 솟는 동기는 이 셋이 채워질 때 나온다. 대니얼 핑크가 대중서 《드라이브》에서 이를 자율성·숙련·목적으로 옮겨 유명해졌다.
문제는 오래된 팀에서 이 세 연료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동시에 마른다는 점이다.
새로 만들어진 팀에서 사람은 모든 걸 스스로 정하며 나아가고(자율성), 매주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장을 체감하고(유능감), 미션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관계성·목적).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3년이 지나면, 일하는 방식은 이미 다 정해져 프로세스에 끼이고, 영역은 이미 다 알아서 배움의 곡선이 평평해지고, “왜 하는지”는 닳아서 그냥 매일의 일상이 된다. 세 연료가 한꺼번에 바닥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회복이 어렵다. 자율성 하나만 더 준다고 “그런데 이걸 왜 하지?”가 풀리지 않고, 목적만 새로 칠한다고 “그래서 내가 새로 배우는 게 뭔데?”가 채워지지 않는다. 하나를 메우면 다른 둘의 공백이 더 또렷해진다.
여기에 한 겹을 더 얹는 것이 프레더릭 허즈버그의 2요인 이론이다. 허즈버그는 사람을 불만족시키는 것과 만족시키는 것이 다른 축이라고 봤다. 급여·복지·직급·사내 정치 같은 것은 위생요인(hygiene factor)이라, 모자라면 불만이 폭발하지만 아무리 채워도 불만이 사라질 뿐 동기로 바뀌지는 않는다. 반대로 성취·인정·성장·책임 같은 것은 동기요인(motivator)이라, 이것이 있어야 비로소 일이 즐거워진다.
오래된 팀의 함정이 정확히 여기다. 연차가 쌓이면서 위생요인, 곧 연봉·직급·안정성은 대체로 좋아진다. 그런데 정작 동기요인, 곧 새로운 성취와 새로운 배움은 앞의 두 노화 때문에 말라 간다. 그래서 **“대우는 분명 좋아졌는데 출근이 재미없다”**는 흔한 상태는, 신비로운 변덕이 아니라 이론이 그대로 예측하는 자리다. 떠날 만큼 불만족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붙지도 않는,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미지근함이다.
마지막으로 역사가 얹힌다. 오래된 팀에는 “야심 찬 목표를 걸었다가 닿지 못한 경험”이 쌓여 있다. 사람은 그걸 기억한다. 새로운 도전 목표를 줘도 속으로 “또 저러다 흐지부지되겠지”가 먼저 떠오른다. 목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 자본이 닳은 것이다. 같은 목표를 줘도 신생 팀은 이 부채가 0이라 진심으로 달리고, 오래된 팀은 시작 전부터 반쯤 김이 빠져 있다. 심리학에서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 부르는 것의 옅은 버전이다.
동기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두 노화를 짚었으니, 처방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전제를 깔아야 한다. 우리는 동기를 흔히 마음가짐의 문제로 다룬다. 의지를 다잡고, 열정을 되살리라고. 그러나 조직 심리학의 무게중심은 오래전에 그 반대편으로 옮겨 갔다.
테레사 아마빌은 수백 명의 직장인에게 매일 업무 일기를 쓰게 하고 그 방대한 기록을 분석했다. 사람의 하루치 동기와 감정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단일 요인이 무엇이었을까. 거창한 비전도, 보너스도, 인정도 아니었다. 의미 있는 일에서 오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는 감각, 그가 진척의 원리(Progress Principle)라 부른 것이었다. 작더라도 분명한 진전이 있던 날, 사람들은 가장 의욕적이고 행복했다.
이 발견이 오래된 팀의 문제를 다시 비춘다. 0.3퍼센트포인트짜리 목표는 너무 멀고 너무 커서, 매일의 진척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 달을 일해도 “오늘 한 걸음 나아갔다”는 신호가 오지 않는다. 그러니 동기가 살 리 없다. 거꾸로 말하면, 동기는 닦달해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진척이 보이도록 환경을 설계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이 관점을 깔고 처방을 보면, 해야 할 일이 또렷해진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다르다
가장 흔한 실수는 두 노화에 같은 약을 쓰는 것이다. 문제공간이 늙어 동력이 빠진 팀에 동기부여 이벤트를 처방하면, 워크숍 당일만 반짝하고 월요일이면 더 허탈해진다. 풀 문제가 없는데 의욕만 끌어올려 봐야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진단별로 약이 다르다.
| 무엇이 늙었나 | 주된 증상 | 1차 처방 |
|---|---|---|
| 문제공간 | 올릴 숫자가 없다, 목표가 ‘유지’로 미끄러진다 | 문제를 재정의하거나, 더 비옥한 영역으로 옮긴다 |
| 사람 | 자율·배움·목적이 동시에 마른다, 미지근하다 | 사람을 순환시켜 세 연료를 리셋한다 |
처방을 조금 더 풀면 이렇다.
문제를 재정의한다. 같은 지표를 0.3퍼센트포인트 더 짜내는 대신, 인접한 영역으로 목표를 점프시킨다. 결제 성공률을 다 짜냈으면, 결제를 새로운 영역(해외·오프라인·B2B)으로 확장하거나, 그 팀이 쌓은 역량으로 아예 다른 문제를 풀게 한다. 팀을 같은 자리에 두고 미션을 갈아 끼우는 것이다. 광맥이 얇아졌으면 곡괭이질을 더 할 게 아니라 광산을 옮겨야 한다.
‘유지’ 목표를 ‘재발명’ 목표로 바꾼다. 영역을 옮기기 어렵다면, 지키는 게임의 틀 자체를 바꾼다. “성공률 97.8퍼센트 유지”는 동기가 되지 않지만, “같은 결과를 절반의 비용·인력·코드로”라는 효율 목표로 프레임을 틀면 유지 업무가 다시 정복할 산이 된다. 운영팀에 “장애 0건 유지” 대신 “장애 대응 시간을 절반으로”를 주는 식이다. 지키는 게임을 개선하는 게임으로 번역하는 것.
사람을 순환시킨다. 가장 강력하지만 가장 적게 쓰는 카드다. 오래된 팀의 핵심 인력을 새로운 영역으로 보내면, 자기결정이론의 세 연료가 한 번에 리셋된다. 새로운 자율성, 새로운 배움, 새로운 목적, 그리고 학습된 무력감까지 환경이 바뀌며 함께 풀린다. 다만 팀에 쌓인 지식이 빠져나가는 비용이 있어서, 전원 교체보다는 고참 한둘을 씨앗으로 새 영역에 이식하고 신규 인력을 수혈하는 교차가 현실적이다.
작은 승리의 리듬을 복원한다. 진척의 원리를 실무로 옮기는 일이다. 그러니 닦달은 번지수가 틀렸다. 너무 크고 먼 목표를 잘게 쪼개, 매주 눈에 보이는 진전 하나를 만들어 주는 편이 낫다.
광맥과 사람
오래된 팀을 두고 우리는 너무 쉽게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고, 그 화살을 사람에게 돌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더 유능해져 있다. 변한 것은 그들이 서 있는 자리의 지질이다. 두껍던 광맥은 얇아졌고, 세 개의 연료는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문 대가로 함께 말랐다.
그래서 오래된 팀을 되살리는 일은 사람을 다그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캘 새로운 광맥을 찾아 주거나 그들을 새로운 광맥으로 데려가는 일에 가깝다. 식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문제였다는 것. 진단을 거기서 시작하면, 워크숍이 매번 헛도는 일은 적어도 줄어든다.
— tom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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